“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1~32)
이 세상에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랜 경력의 주부도 음식을 조리하다가 손을 벨 수 있습니다. 의사가 절단해야 할 다리 대신 멀쩡한 다리를 절단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부주의와 집중력 부족으로 차를 지하 주차장 벽에 긁거나 회전을 크게 해야 하는데 적게 하는 바람에 쇠기둥을 박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과오를 저지르며 삽니다.
심지어 본인의 실수와 잘못으로 본인뿐 아니라 가족, 지인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절망과 좌절, 낙담에 빠져 술에 의존하고 애꿎은 가족만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수와 잘못, 죄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하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애꿎은 가족에게 화풀이 하거나 거짓말, 질투, 미움, 교만 등의 죄를 저지르면 후회, 절망, 낙담, 자포자기, 죄의식을 낳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들고 비방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 합니다. 본인의 실수와 잘못, 죄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해소하려고 하다 보면 더 큰 좌절과 낙담에 직면하며 비참한 상태에 빠집니다.
우리는 실수와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고 와야 합니다.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하나님의 용서가 없다면 인간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생 갚으려고 해도 결코 갚을 수 없는 1만 달란트의 빚을 진 사람과 같지만 임금이 그 빚을 탕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100데나리온(100일 치 임금)을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고소하여 옥에 가두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임금이 노하여 우리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을 다 갚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마 18:21~3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어서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마 5:7).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자기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마 7:3~4).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은 사랑을 구하는 자이지만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사람입니다(잠 17:9). 우리는 무엇보다 열심히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벧전 4:8).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것은 사실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실수하고 과오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럴 때 불쌍히 여김을 받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마 7:12).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지 않으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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