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족쇄를 풀고 탄생한 ‘실험 세포’

 

사람을 가두는 족쇄 중에 가장 무서운 족쇄는 말의 족쇄입니다.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족쇄인 만큼 자각도 힘들고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갖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리 못해.’라는 이 한 문장이 나를 발전하지도 시도하지도 않게 만들었던 족쇄였고,

참 오래도 저를 가두어 묶고 있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말에 묶여 있는 마

음은, 서로 음식을 해서 나누어 먹는 어느 자리에도 마음 편히 다가가지 못하게 했고,

남편의 밥을 챙겨야 한다는 ‘결혼’과 애들 밥을 챙겨야 한다는 ‘자녀 출산’도 두려워하게 했으며,

제대로 된 한 끼 밥상을 타인에게서 찾는 스스로를 의존적인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커피를 스스로 만들어 볼 생각도 않고, 자판기 커피와 카페 커피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블랙커피의 맛은 쓴 맛이라고만 생각했고,

커피에 우유와 설탕 시럽을 잔뜩 넣은 단맛을 즐길 줄 밖에 몰랐기 때문에,

일회용 커피 믹스나 커피 바리스타가 레시피 대로 만드는 카푸치노나 라테 같은 커피가 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친한 지인이 블랙커피를 찾았습니다.

당시 집에는 믹스커피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다음번에 지인이 다시 방문했을 때는, 옛날 어머니들이 집에 사놓으시곤 하던 인스턴트커피를 한 통 사놓았다가,

뜨거운 물에 타 드렸습니다. 커피를 홀짝이는 지인의 얼굴은 결코 만족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신선한 원두로 만드는 블랙커피가 맛있다는 말을 슬쩍 흘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주워 들었습니다.

지인이 맛있다고 한 원두커피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들 키우면서, 잠깨려고 매일 들이켰던 인스턴트 믹스 커피에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질렸던 참이었거든요.

원두로 내리는 블랙커피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일회용 믹스 커피와, 카페에서 파는 라테의 차이가,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차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인스턴트 블랙커피와 원두 블랙커피는 뭐가 어떻게 다를까. 나도 그 맛을 알고 싶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맛있는 블랙커피 한 잔 만들어 주고 싶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라면, 인스턴트보다는 원두가 더 건강한 선택일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이 가슴을 파고드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으로 커피 만드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보았어요.

연구소 실험실에서 성장한 ‘실험 세포’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서 가설을 세웠습니다.

 

“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거 아닐까”

자신감의 향기

저는 원두커피와 그라인더를 사다 놓고, 집에서 온갖 실험을 다 해보았습니다.

커피를 갈아 그대로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 입자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보기도 했고,

프렌치 프레스 기구, 이탈리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쓴다는 주전자처럼 끓여 쓰는 에스프레소 기구,

여러가지 집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간단해 보이는 장비들을 다 사서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커피 입자가 완전히 걸러지지 않고 커피에 둥둥 떠 있는 것이 거슬려서,

결국 필터를 써서 걸러야겠다는 생각까지 갔어요.

필터도, 종이 필터부터 천 필터, 스테인리스 필터까지 다 사용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지금 사용하는 무표백 종이 필터를 쓰되 뜨거운 물에 한 번 헹궈내고 쓰는 방식입니다.

필터를 얹기 쉬운 여러 가지 기구를 다 보다가,보로실리케이트 유리라는 재료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디자인도 심플해서 관리가 쉽겠다고 판단하여, 현재 쓰는 기구 (케멕스)를 한화로 3만 원 정도에 약 10여 년 전에 구매했고,

중간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실수로 깨뜨린 걸, 다시 똑같은 것으로 사서 몇 년째 잘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입자를 다양하게 갈아보고, 원두도 브랜드 별로, 로스트 방식 별로, 생산지 별로 다 사서 맛을 보고,

물 온도도 다양하게 시도해 본 후, 지금 제가 내려 마시는 방식에 정착했습니다.

내가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만들 수 있고,

손님을 기쁘게 하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가져온 자신감의 진한 향기에 저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한껏 취했습니다.

낯부끄럽게도, 한때는 동네 아는 얼굴을 만나기만 하면, 아무 때나 문 두드리라고,

정말 맛있는 커피 내려준다고 떠들고 다닌 적도 있었답니다.

 

커피는 저에게 무거운 ‘못한다’ 족쇄를 풀여준 열쇠이자, 인간 승리이자, 자신감입니다.

반드시 어떻게든 해내는 저의 끈질긴 집념과 능력을 보여준 살아 있는 증거, ‘프라이드’입니다.

나를 믿는 자신감 향 커피만 있으면, 에너지 드링크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커피는 그렇게 나를 일으키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나다운 향기입니다. 평생 자랑스러울 ‘내가 잘하는 요리’입니다.

 

http://blog.naver.com/sulai/222985597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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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여름휴가는 무척 소중합니다.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날에 즐길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듯합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기차역이나 공항은 생각만 해도 배꼽을 간지럽히죠.

그러나 또 어떤 이는 시원한 집에서 늘어져,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달콤한 낮잠을 자는 상상에 벌써 나른해지곤 합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어 자발적 집콕이 더 신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쯤에서 저는 방구석 시간여행자가 되어 조선시대를 종착지로 떠나보려 합니다

 

 

조선시대 직장인이라 함은 모두 관직을 맡은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요.

달력이 없어 요일을 나눌 일도 없었을 테니, 평일과 주말의 개념도 없었답니다.

한 달을 열흘 간격으로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럼 여름휴가도 열흘쯤 되었을까요.

버스나 기차, 비행기 등 단숨에 멀리 달아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목적지를 기준으로 오고가는 시간이 꽤나 걸리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직 기록상 밝혀진 여름휴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없지만,

다행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조선시대 직장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입춘이나 동지 등, 한 달에 두 번 꼴로 있는 24절기는 휴무였다고 합니다.

또한 국선왕의 제사일이나 특정한 제사일을 임의로 정해 국가 공휴일로 보내기도 하고요.

근친을 찾아뵙는 것으로 제한하여 휴가 관련 문서를 제출하여 결재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와, 조선시대 휴가철은 조선의 왕부터 참 소박했습니다.

궁궐을 벗어나는 것이 매우 드물었던 왕은 항상 업무에 쌓여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왕은 여름휴가를 떠난 것처럼 풍류를 즐기기도 했는데요.

시원하게 두었던 수박이나 식혜, 수정과 등의 음식을 먹고

경복궁이나 경회루, 창덕궁 같은 누각을 바꿔가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흐르는 물에 꽃과 술잔을 띄웠습니다.

조선에서 규모가 가장 큰 홈캉스를 제대로 누렸던 셈이지요.


선비들 또한 냇가를 더위를 여러 방법으로 무척이나 즐겼던 것 같습니다.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에 발을 담구고 시원한 물보라가 일면 절로 흥이 나서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더위를 났던 것이죠.

시원한 그늘 아래 ‘탁족’이 가장 대표적인 피서였다고 하는데요.

고사탁족도나 노승탁조도 등, 조선 중기 민화로도 많이 남겨져 있답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 더위와 무료함을 견뎠을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기후도 많이 변하고 있는 중이지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에 같은 시대에 만나지 못한 우리는 기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행복’의 중요함은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매일, 매순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나도 모르게 노랠 흥얼거리나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 한 장으로 시간을 남겨두는 일.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먹는 집밥에 노곤해지는 것처럼, 때때로 기쁘고 때때로 즐겁고 때때로 행복할 뿐이죠.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각자의 시간을 연결시켜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 임금만큼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내 집이 천국이라 말할 때의 그 편안함으로 방구석 시간여행자가 되어 보았습니다.

같은 시대에 만나지 못했어도 여름의 쉼으로 같이 이어진 것이 왠지 모를 위로가 되는 날입니다.

 

여름휴가라고 정하고 떠나본게 10년도 넘었네요,,,

더운여름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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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시간이 있거든

후회는 그저

뒤늦은 변명일 뿐이다.

말과 생각의 군더더기다.

반성이 이성적인 성찰이라면 후회는 감성적인 집착이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구질구질하게만 느껴진다.

후회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누구나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참 많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땅을 치고 후회하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릅니다.

분명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일 뿐입니다.

하지만 반성과 성찰은 다릅니다.

지난 실수와 잘못에서 금싸라기 같은 교훈을 얻어

어제보다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생산의 시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후회를 하지 않을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후회와 반성은 다르다는것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반성은 더 나은것을 만들어 갈 수 있지만,,

후회는 감정과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후회를많이 하면 자기 감정만 삭막해 지는 길입니다,,

후회는 할수록 후회스러운 것입니다,,,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미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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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예고된 부고를 접했다. 존경을 담아 내심 좋아하던 분의 부고였다.

어머니와의 친분으로 시작된 그분과의 인연은 내게도 이어져 나 역시 그분의 사랑의 혜택을 받았다.

손수 농사지으신 식재료들과 약이 되어줄 건강식, 내 아이의 손에까지 용돈을 쥐어주시던 다정한 온기를

채 돌려드리지 못하고 떠나셨다 생각하니 죄송했고 이제 만날 수 없을 그분의 빈자리가 허전했다.

 

 

늘 베풀어주셨던 감사함에 무엇을 답례로 드릴까 고민했던 기억은 나지만 결국 드리게 되었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설령 무엇을 드렸다한들 그분에게 받은 마음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의(善意)’. 그분이 내게 베풀어 주신 마음은 단지 그것이었다.

받은 마음을 베풀어 준 당사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잘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곳에 나 역시 선의만 품고 꺼내야 할 것이다.

 

떠난 분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으나 앓던 지병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았고,

주변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마음에 품고 있던 소망도 눈으로 보고 가셨던 그분의 삶은 복된 삶이었을 것이다.

떠나는 마음이 부디 평안하셨길 바라본다.

 

 

죽는 일에 관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남겨진 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떠올렸을 때 가장 마음을 쓰라리게 휘감는 개념은 ‘상실’이다.

직계 가족의 죽음은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상상하고 싶지 않으나

언젠가 그 순간이 온다면 나의 방황의 이유는 아마 ‘상실’일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그의 빈자리를 생각해 보면,

가늠되지 않는 상실의 무게에 아득해지곤 한다.

 

남겨진 자가 아닌 아닌 행위자로써의 죽음에 관하여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살아온 날 중 가장 죽음과 가까웠던 시간은 군대에서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 나에게 ‘죽음’이라는 존재는 언젠가 마주할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 것이었다.

‘죽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살고 싶지 않았다. 삶에 미련이 없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의지로 지금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질병이나 사고 등 내 의지로 선택한 죽음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시간이 있었다.

 

 

주변에서 누군가의 자살이 종종 사건사고로 다뤄졌고,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죽음까지 겪고 나자 마음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어느 날은 집안에 있던 끈들을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던 일도 있었다.

아마 당시 마음으로 죽음의 기운이 연상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피해버렸으리다.

비슷한 사람은 서로 알아보는 걸까. 그 시절 나의 곁에는 죽음과 아픔과 상처의 그림자를 품은 이들도 자주 있었다.

 

한날은 같은 부대 동료와 식사를 하던 때였다. 대화가 깊어지던 어느 순간 그는 문득 팔을 걷어 내게 내밀었다.

그의 한쪽팔에 가득했던 빨갛고 선명했던 여러 개의 칼자국을 보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전입 왔던 그 역시 겪었을 무수한 시행착오들과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아프도록 이해되었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했던 그때는 내 인생에서 그 시간들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그 시간들은 내게서 지나갔다.

구체적인 과정 까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지나고 보니 시간은 약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관용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게 정말로 그러했다.

그 뒤로 삶은 계속되며 무수한 기회들을 내게 주었고, 많은 좋은 인연들이 내 앞에 나타났고,

수많은 가슴 떨리는 일들이 내게 찾아와 나는 가끔 내 삶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에 안심했다.

그럴 때 가끔 먼저 떠난 이들이 떠오르는 날도 있었다.

모두 나와 같지 않기에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죽음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단호하다.

 

 

내 앞에 이어지는 삶이 다행이라 느낄 때, 이른 죽음을 스스로 택한 이들로 마음이 따끔했다.

스스로의 삶에 조금만 더 기회를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살아보았으면,

절망으로 가득했던 시간보다 좋은 시간이 왔을 텐데 라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렇게 내 삶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살고 또 살고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에 관함이라면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은 이런 모습이라고 이런 것이라고 이것이 삶이라고 오늘 결론지어도

내일이면 내가 알던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삶의 새로운 모습들을 마주하기에

아직도 나는 나의 삶에 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살아 보아야 할 것 같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들을 낱낱이 생생하게 끝까지 다 살아보면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삶에 관해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의 모습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디 마지막을 예감하고,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삶의 엉킨 일들을 정리하고 비로소 내 삶은 이런 것이었음을 알고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회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의 몫이니 삶의 짧고도 유한함을 알아가는 나는

오늘도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먹는다.

 

떠난 분의 죽음을 계기로 잠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떠난 그분을 위해 마음 깊이 기도하며,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또 성실하게 살아내야겠다.

by. 수진 https://brunch.co.kr/@sulove/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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