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고 싶다.”
“언젠가 창업을 하고 싶다.”
“현재의 나를 바꾸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성공을 위한 비전을 즉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동하기란 말처럼 그리쉬운일이 아니죠

왜 행동할 수 없을까?
“그래. 오늘은 반드시 해야지!”하는 결심을 하고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의욕도 느껴졌고 행동하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기 전까지는 완벽한 흐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 서핑에 빠져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는 순조로웠는데, 왜 우리는 늘 계획만 세울 뿐 행동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역시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의지가 약한 것 같아.
역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행동할 수 없는 거야. 아니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행동할 수 없는 원인만 제거하면,
반드시 행동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에 다다르죠.
원인을 특정 짓는 ‘원인 찾기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시간만 덧없이 흘러가버립니다.

“왜 안 될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혹시 ‘아들러 심리학’을 알고 있나요?
아들러 심리학이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칼 구스타브 융(Cal Gustar Jung)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 박사가 창시한 심리학입니다.
2013년에 출판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통해서 아들러라는 이름을 알게 된 사람도 많이 있을 텐데요.
아들러 심리학은 임상심리학뿐만 아니라 현재 주목을 모으고 있는
신경언어 프로그래밍(neuro-inguistic programming, NLP)이라고 불리는 학문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다면, 아들러 심리학은 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원인론=왜 안 되는 것일까? 어디가 문제일까?‘가 아니라, ‘
목적론=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심리학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러의 ‘목적론’
‘원인론’의 대표적인 사고방식으로 프로이트가 주장한 ‘트라우마(trauma)’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아들러는 이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영 작업 결과가 좋지 않은데,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때, 프로이트라면 “그것은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무엇을 해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다릅니다. 아들러에게는 트라우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존재하지도 않는 트라우마에 얽매여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할 것인가?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겠는가?’ 라고 되묻습니다.
아들러에 의하면, 당신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부하 직원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 않다, 편하게 일 하고 싶다.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는 등의 무의식적인 목적이 존재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은가?
만약 정말로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면, ‘목적’을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가’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은가,
어떻게 하면 지금 보다 일이 더 잘 진행될 것인가’에만 의식을 집중해야 합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 과연 어느 쪽의 사고방식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까요?
나는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쪽에 의식을 집중하는 아들러 심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인을 특정 지으면 반드시 행동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최근에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원인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양육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이미 성인인데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어머니를 찾아가서 “어머니가 저를 잘못 키웠기 때문에 지금 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원망을 늘어놓아야만 할까요?
설사 어머니의 양육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빴던 것이 원인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로지 원인만을 찾아 나선다면, 초등학교1학년 시절의 담임선생님이 지나치게 엄격했다.
중학생 시절에 교우관계가 나빴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등의 이유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인들을 모두 특정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설사 원인들을 모두 특정 한다고 해도
그것들을 해결하거나 제거 하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원인에 중점을 두면 ‘과거는 바뀌지 않으니까 손을 쓸 방법이 없어’라는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쪽이 행복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가